IT에서 고전을 읽을 필요가 있는가?
한빛미디어
|
2004-05-24
|
by HANBIT
21
19,429
저자: 한동훈(traxacun at unitel.co.kr)
많은 사람들이 독서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고전을 읽어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고전에 대한 이야기는 일반적인 독서 뿐만 아니라 프로그래머들에게도 익숙한 이야기다. 그리고 고전의 재발견이라는 트렌드하에 많은 책들이 번역되어 소개되고 있으며, 읽어야 한다고 한다. 이런 견해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인 입장이다.
고전이라는 말만큼 사람에 따라 제각기 사용되고 해석되는 말도 없기 때문에, 과연 무엇을 고전이라 해야 하는 것인지를 분명하게 정의할 필요가 있다.
문학에 있어 고전이라고 하면, 유럽에서는 그리스-로마의 고전을, 동양에서는 사서오경등의 한서를 가리킨다. 좀더 확대된 의미에서의 고전이라면 중세까지 포함하여 유럽에서는 "아더왕 전설"이나 토마스 아퀴나스의 종교서적 "신학대전"이 포함된다. 즉, 르네상스 이전 시기에 나온 서적을 고전이라는 범주에 넣을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독서론에서 고전을 읽으라고 할 경우 결코 이런 의미의 고전이 아니다. 대개 톨스토이라든가 도스토예프스키 등 19세기의 전형적인 문학이 주류를 이룬다. 19세기 문학이 과연 인류에게 고전으로 자리매김할 수 있는 출판물인지는, 아직 검증이 끝나지 않은 채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염두에 두고 좀더 지켜보는 것이 올바른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다시 말해 19세기 문학은 기껏해야 100여 년 전의 출판물에 불과할 뿐이며, 진정한 의미에서 고전이라는 이름을 붙일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면 적어도 500년이나 1,000년 정도의 시간 속에서 검증을 받고 후세에 남겨져야 한다.
10년전에 인기있던 책을 읽는 독자가 현재는 거의 없는 경우도 대부분이다.
20년전에 인기있던 책을 읽는 독자가 현재는 거의 없는 경우도 대부분이다.
50년전에 인기있던 책을 읽는 독자가 현재는 거의 없는 경우도 대부분이다.
이처럼 어떤 작품이라도 점차 시대의 검증을 받으며 사라지게 마련이다. 그 중에서 10년 정도의 검증을 거치면서 사라져 버리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50년 정도 거치면서 사라져 버리는 작품도 있다. 어떤 작품은 100년 정도는 살아 남지만 그 이상의 검증 과정을 거치면서 사라져 버리는 수도 있다. 한편으로는 몇 백 년이 지나도 살아 남는 작품도 있다. 이렇게 생각하면, 19세기 문학이라든가 20세기 문학은 아직 검증의 과정이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그러므로 고전이라 얘기하며 언급되는 목록에 포함된 작품 중에는 앞으로 점차 사라져 버릴 작품도 포함되어 있는 셈이다.
역사가 짧은 컴퓨터 사이언스에 있어 고전이라 불리는 서적들은 어느 시점에서 선을 그어야 타당할까하는 것이 문제다. 1946년에 에니악이 탄생하고 1978년 8086이라 불리는 현재 사용하는 x86 PC의 초기 버전이 탄생한다. 고전이라 불리는 논문이나 도서들도 이 시기를 전후로 탄생한 것들이 많다.
프로그래밍의 경향이 변화해왔으며 그러한 변화에 따라 다양한 언어들이 등장하였다. 과거 시대에 유행했던 언어들이 현재는 특수목적을 위해서 남아있고, 대중적으로 쓰이지 않게 된 언어들도 많다. 이처럼 그 당대에는 컴퓨터 세계에서 주류라도 확신되었던 것이 10년, 20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결코 주류가 아니었으며, 다음 세대에 전혀 영향을 주지 못했다고 결론이 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는 것이다.
고전이 현대의 지의 총체인 것은 맞다. 그러나 과거 지의 총체는 현재의 최신 보고서에 존재한다. 그러므로 과거의 지의 총체를 알고자 한다면 결코 고전에 구애받을 필요가 없으며, 또한 고전에 얽매여서도 안된다. 예를 들어, 물리학을 공부하는 사람에게 "뉴턴의 "자연과학의 수학적 원리"를 읽어보세요"라고 충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현대 물리를 공부하는데 있어 이 책은 전혀 필요가 없다. 뉴턴 역학을 알 필요는 있지만(이미 고등학교때 배우고, 대학에 와서 다시 복습한다) 이것을 공부하기 위해 "자연과학의 수학적 원리"까지 읽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과학사와 같은 역사를 공부할 사람이라면 이 책을 읽어야 겠지만 말이다. 따라서 보다 나은 프로그래밍을 위해서, 분석을 위해서 공부하고 싶다면 고전에 얽매이지 않아도 된다. 게다가 2000년 전후로 나온 책은 아무리 기술 발전의 속도가 빠르다해도 고전이 아니며, 독자들에게 검증 과정을 거치고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컴퓨터 분야에 있어 어느 시점에서 선을 그어야 타당할까하는 것이 문제지만, 분명한 것은 많은 책들이 여전히 검증의 과정을 거치고 있으며 이들 중에 시대를 초월하여 독자 층을 계속 유지할 수 있는 서적이 있을 것이며, 그 반대의 경우도 있을 것이다. 결국, 최종적으로 아마추어 평론가들만을 대상으로 남겨질 서적과 시대를 초월하여 일반인들이 읽게 될 서적, 그리고 역사 속에 제목은 남아 있으나 아마추어 평론가를 포함하여 그 누구도 읽으려 하지 않는 서적 등으로 구별되어질 것이다.
과거 지의 총체는 현재의 최신 보고서에 있을 텐데 어떤 분야를 학습하기 위해 과거의 책들을 시대 발전순으로 읽어야 제대로 이해한 것이다라는 식의 미신같은 이야기가 기술의 첨단을 달리는 프로그래머들 사이에, 또는 온라인상에, 잡지상에 만연하는 것을 자주 발견한다. 예를 들어, XP에 대해서라면 저명한 저자의 초기작이 있으니 읽어봐야 한다고 말하지만, XP 방법론도 발전하면서 저자 자신도 수정, 보완하여 발전시켜 나가고 있으며 현재의 XP는 수년전에 쓰인 그 책 그대로의 XP가 아니게 된다. 그렇다면 최근까지의 발전사항을 반영시켜 출간된 새로운 보고서나 책들에 과거 지의 총체가 담겨있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결론적으로 기술의 흐름이나 역사에 대해 이야기 좋아하는 아마추어 평론가라면 과거의 책들을 읽을 필요가 있겠지만, 현재 지의 총체에 접근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최신 보고서를 찾아봐야 할 것이다.
TA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