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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노베이션 신화의 진실과 오해 - 에파파니(epiphany)의 오해와 진실(2)

한빛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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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4-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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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ANBIT

11,501

제공 : 한빛 네트워크
저자 : 스콧 버쿤
역자 : 임준수, 서상원
출처 : 이노베이션 신화의 진실과 오해

아이디어는 결코 홀로 서지 않는다

내가 지금 타이핑하고 있는 키보드는 아주 많은 아이디어와 발명에 힘입은 결과물이다. 타이프라이터와 전기, 플라스틱, 문자 언어, 운영체계, 회로, USB 연결, 그리고 이진법의 데이터 등이 그것이다. 이 기술 중 만약 어느 하나라도 제거된다면 내 앞에 있는 키보드는 사라질 것이다. 다른 모든 이노베이션들과 마찬가지로 키보드 역시 기존에 존재했던 모든 것들의 조합이다. 이 조합은 새로운 것일 수도 혹은 독창적인 방식으로 나온 것일 수 있지만, 이 키보드를 구성하는 물질들과 아이디어들은 키보드가 만들어지기 이전에도 어디에선가 어떤 형태로든 이미 존재했었다. 아무리 위대한 생각이라고 여겨지는 것일지라도 결국에는 무수하게 많은 그보다 더 작은 기존 생각들로 나뉘어질 수 있는 것이다.

이노베이션의 산물에도 똑같은 패턴들이 존재한다. 어떤 이노베이션에도 단 하나의 마술적인 순간은 존재하지 않는다. 다만, 시대를 지나오면서 축적된 수많은 작은 영감들이 그 이노베이션을 이끌어왔다. 인터넷만해도 팀 버너스 리가 월드와이드웹을 만들기 위해8 사용했던 그 시스템에 가까워지기까지 거의 40년간 전기, 네트워킹, 패킷, 스위칭, 소프트웨어에서 축적된 수많은 이노베이션들을 필요로 했다. 냉장고나 레이저, 식기세척기 같은 것들도 그렇다. 이들을 진짜 비즈니스 이노베이션으로 만들기 위한 여러 가지 종류의 혁신들을 통해 지난 수십 년간 문화적 기술적 장벽들이 제거되지 않았더라면 제품으로서는 가치 없이 여겨졌을 것이다.

위대한 생각들을 꿈같은 이야기로 만들어버리면 재미나게 들릴지는 모른다. 하지만 그 꿈같은 거대한 생각들이 세상에 탄생하게 된 것은 바로 수많은 작은 영감들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보통 자신이 직접 이노베이션에 뛰어들어보거나 창업을 해보기 전에는 그런 꿈같은 이야기를 벗어나 그들이 직면해야 하는 도전들을 인식할 수 없다.

때문에 사람들은 신화적으로 재구성한 레오나르도 다 빈치, 토마스 에디슨 이야기를 쉽고 가볍게 읽는 경향이 있고, 아마존을 창업했던 제프 베조스가 했던 일을 전적으로 다른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흉내내보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한다. 또한 어떤 커다란 생각 하나만으로는 성공하기에 충분하지 않다는 사실에 많은 사람이 놀라곤 한다. 문제는 고된 작업과 수많은 아이디어를 요구하는 과정을 필요로 하는 이노베이션을 원하기보다는 대부분의 사람이 에피파니 같은 순간적인 이노베이션을 얻기를 원한다는 점이다.

에피파니의 잘못된 통념은 마술의 순간이 바로 위대한 계기가 되는 것임을 믿게 만들지만, 이런 순간은 사실 하나의 조연 역할밖에 하지 않음을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다. 에피파니를 가장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퍼즐하는 것을 상상해보면 된다. 마지막 조각을 퍼즐이 완성되기 직전 그림에 끼워 넣을 때, 그 마지막 조각에 어떤 특별한 것이 존재하는가 아니면 그 순간 당신이 어떤 특별한 옷을 입기라도 하는가 생각해보라. 그 마지막 조각이 의미 있는 유일한 이유는 당신이 이미 짜놓은 다른 조각들 때문이다. 퍼즐을 뒤섞어놓고 다시 맞추기를 시도한다면, 이번에는 아마 다른 어떤 조각이 그 마지막 마술의 완성을 이룰 것이다.


[그림 1-2] 에피파니는 마지막 조각이 퍼즐에 들어맞는 순간이다. 그러나 그 마지막 조각이 다른 어떤 조각들보다 더 신비한 것은 아니며, 그 마지막 조각이 다른 조각들에 연결되지 않는다면 퍼즐의 완성이라는 그 마법처럼 매력적인 순간도 없다.

에피파니는 이런 식으로 흘러간다. 이는 뉴턴의 사과도 아니고 특별히 더 경배해야 할 마법의 순간도 아니다. 이는 단지 먼저 오는 일이냐 아니면 나중에 오는 일이냐 일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노베이션의 와중에서, 어떤 영감이 퍼즐에서 마지막 조각이 완성된 그림을 만들듯이 마법의 순간으로 다가오는 것은 다음 두 가지 이유 때문이다. 첫째는, 수많은 시간과 여러 해에 걸쳐 들인 투자에 대한 보상이기 때문이다. 퍼즐에 비유하자면 하나하나를 끼워 맞추 는 단순한 과정 자체보다, 마지막 조각을 둘 때 우리는 수백 조각의 가치에 해당하는 훨씬 큰 총체로서의 보상감을 느끼게 되는 셈이다. 두 번째 이유는, 혁신적인 생각은 퍼즐만큼이나 예측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마지막 조각을 맞출 때와 같은 결정적인 순간이 언제 올지 알 수가 없다.

이것은 일종의 놀라움으로 다가온다. 매우 차갑고 짙은 안개로 가득한 기묘한 산을 오르는 것처럼, 정상에 오르기 위해서는 얼마나 더 올라야 하는가를 결코 알 수 없는 것, 바로 이게 이노베이션의 과정인 셈이다. 어느 순간 갑자기 공기가 맑아지고 정상에 있다는 것을 느낄 때, 그 때 바로 압도되는 기분을 느끼게 되는 것이다. 그 순간이 올 것이라고 희망은 걸었지만, 언제 올 지 혹은 그때가 정말 올 지에 대해 확신하지는 못하는 상황에서 갑자기 느끼게 되는 짜릿함이 바로 무언가 마법의 순간이 찾아온 것 같은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다(이게 바로 사람들이 왜 산을 등반하고 새로운 물건을 만드는가에 대한 설명이 되는 셈이다).

레이저를 발명했던 고든 고울드(Gordon Gould)는 그의 에피파니 순간을 이렇게 말하고 있다.

“토요일 밤 중이었는데 모든 것이 갑자기 내 머리 위로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레이저를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를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섬광처럼 다가온 영감을 얻기 위해서 나는 지나온 20년간 그 발명에 필요한 재료들을 쌓아 올리듯 물리학과 광학에 몰두했어야 했다.”

어떤 중요한 이노베이션이나 영감은 이렇게 찾아오는 법이다. 마치 복잡한 퍼즐에서 마지막 조각을 끼워 맞추듯이. 그러나 퍼즐과는 달리, 실제 아이디어의 세계는 셀 수 없이 많은 방식으로 조합될 수 있다. 따라서 이노베이션을 향한 도전과 기회는 해법이 아니라 풀어야 할 문제 그 자체 에서 생겨나는 수도 있다. 이노베이션을 이루기 위해 기울였던 노력들은 후에 다른 문제를 풀기 위해 누군가에 의해 다시 사용될 수도 있고, 다시 적용될 수도 있는 것이다.



에피파니와 함께 또 다른 위대한 이노베이션의 전설은 바로 그리스 수학자이자 물리학자이며 발명가인 아르키메데스의 유레카(Eureka) 이야기다. 이야기에 따르면, 아르키메데스는 왕으로부터 선물이 가짜 금으로 만들었는지를 감정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 어느 날 아르키메데스는 목욕을 하다가 그가 탕 안에 들어갔을 때 물이 흘러나가는 것에 착안하여 왕이 부탁한 문제를 해결할 방법(부력의 법칙)을 깨달았다고 한다. 어떤 물체의 부피와 무게를 알면 바로 밀도를 알 수 있다는 생각이다. 그는 “Eureka! ”(나는 그것을 알아냈다!)라고 외치면서 벌거벗은 채로 길가로 달려 나갔다는 것이다.

뉴턴의 사과 이야기처럼, 이 이야기 역시 아르키메데스가 목욕을 하기 전 그 해법을 발견하기 위해 쏟았던 그 엄청난 시간들을 간과하고 있다. 역사는 이 이야기의 스케치만 해 줄 뿐이지만, 내 생각에 아마 아르키메데스는 이노베이션을 이루기 위해 그가 받았을 여러 중압감으로부터 얻 은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목욕을 하지 않았겠는가 싶다.

구글의 직원이나 MIT 스텝과는 달리 아르키메데스는 가지고 놀 장난감도 없었고, 열을 식히기 위해 발리볼을 할 수 있는 코트도 없었지 않았는가. 따라서 에피파니의 그릇된 인식과 마찬가지로, 우리가 듣는 것은 그 마지막 조각이 끼워 맞춰졌을 때 그가 어디 있었는가 일 뿐, 다른 조각 들이 어떻게 거기까지 도달했는가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창의력: 발견과 발명의 흐름과 심리(Creativity: Flow and the Psychology of Discovery and Invention)』10의 저자 미하이 칙샌트미하이(Mihaly Csikzentmihalyi)는 예술가에서 과학자에 이르기까지 창의적인 사람들 100여명을 통해 생각의 과정을 연구했다. 칙센트미하이 교수는 두뇌 촬영과 같은 임상 심리학적 방법에 의존하는 대신 각 이노베이터의 개별적 영감을 분석하였다. 이를 통해 이들이 숨막힐 것 같고, 자멸적일 만큼 엄격한 순수과학의 굴레에 얽매이지 않고 어떻게 이노베이션에 이르렀는가를 이해하려고 했다.

칙센트미하이 교수가 세운 목표 중 하나는‘에피파니를 이해하고, 어떻게 그것이 발생하는가’였다. 칙센트미하이는 에피파니를 초기, 통찰기, 그리고 후기 세 부분으로 구분하였다.

초기에는 문제를 인식하는데 수많은 날을 보내고, 그 문제의 영역 안으로 발명가 자신을 몰입시킨다. 이노베이터라면 이때 보통 이런 질문을 던지게 된다.“ 이와 비슷한 게 세상에 또 존재할까?”,“ 내가 갖고 있는 문제와 비슷한 것을 누군가 푼 적이 있을까?”그리고 나서 지식이 소화되고 숙성되는 부화의 기간이 있다. 이 부화의 시간 중에 이노베이터는 때로는 멈출 수도, 정체된 상태에 빠질 수도 있고 자신감을 잃을 수도 있는데 그리스 사람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아마“뮤즈를 잃어버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아주 대단한 영감이 떠오른다면 바로 이처럼‘숙성의 기간과 정도’가 아주 깊어질 때가 그 시기일 수 있다. 이때 긴 멈춤은 발명가들의 생각이 그들이 관찰한 모든 것들을 놓치지 않고 따라잡게 하는 수단일 수도 있다. 칙센트미하이는 얼핏 보기에는 관련되지 않은 것들을 관찰하는데 투자한 시간이 때로는 새로운 생각들을 얻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칙센트미하이는 이렇게 말한다.“ 부화의 기간 동안 발생했던 것들에 대한 인지적 설명에 따르면 우리가 인지하지 못하는 가운데서도 심지어 우리가 자고 있는 동안에도 어떤 형태의 정보처리가 계속 진행된다”

잠재적인 생각들이 때로는 창의적인 생각들에 큰 도움이 되며 이런 것들이 결국 우리가 꿈꾸는 무언가 설명할 수 없는 영감의 원천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유력한 생각이 잠재적 상태로부터 나타나고 머릿속에서 왕성히 돌아갈 때, 발명가들은 이게 어디선가 불현듯 찾아온 것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잔디를 깎는 동안에도 우리가 인지할 수 없는 잠재적인 생각들이 떠오르곤 한다.

뉴턴과 아르키메데스의 신화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가장 큰 교훈은 바로 휴식을 취하면서도 열정적으로 일하라는 것이다. 나무 밑에 앉아있거나 욕조에 몸을 담고 느긋한 시간을 보내면서 우리의 생각이 잠재적 상태에서 자유롭게 활보하게 해보라는 것이다. 세계적 물리학자인 프리만 다이슨은 이런 생각에 동의한다.“ 한가하게 지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창의적인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래서 나는 여유롭고 한가롭게 지내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물론 이런 조언이 연구보다는 노는 것을 장려하려는 것은 아니다.

일에서 휴식으로의 전환이 보상을 주는 경우는 몰두하고 있는 일을 어느 정도 마친 다음에서이다. 어떤 일 중독 이노베이터들은 이런 원리를 응용해서 여러 가지 일을 동시에 벌인 다음에 하나의 프로젝트를 다른 프로젝트를 끝낸 상태에서 일종의 휴식의 매개체로 이용하기도 한다. 에디 슨이나 다윈, 다빈치, 그리고 미켈란젤로, 반 고흐 등이 이런 부류의 일 중독 이노베이터인데, 이들 모두는 다른 분야에 있는 여러 가지 프로젝트를 교대로 진행하면서 생각의 교환을 촉진시키고 머릿속에 새로운 영감을 싹트게 한 것 같다.

뉴턴의 사과나 아르키메데스의 욕조에서 발견할 수 있는 진실 중 하나는 혁신의 돌파구를 위한 자극은 평범한 장소에서 올 수 있다는 것이다. 창의적인 사람들이 일반 사람들보다 서로 연관성이 없는 생각을 더 쉽게 연결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연구 결과도 나와 있다. 리차드 파인만 (Richard Feynman)은 코넬대학 구내식당에서 접시를 돌리는 학생을 신기하게 관찰했고, 결국 이 행위를 설명하는 수학으로 양자물리학에서 풀리지 않았던 문제에 연결함으로써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피카소는 고물 자전거에서 안장과 핸들 부분을 재조합해 그의 수작으로 꼽히는‘황소 머리’를 만들었다.

‘관찰은 뛰어난 영감에 이르는 중요한 열쇠다’라는 생각은 다빈치를 보면 또 알 수 있다. 수백 년 전에 다빈치가 쓴 기록을 보면 그가 자연 관찰을 통해 영감을 얻어 유명한 기술적 발명을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정지한 채로 서서 우연하게 형성되었을 것 같은 패턴들을 잘 지켜보라! 예를 들어 벽에 묻은 얼룩 같은 것들 또는 벽난로의 재들, 또는 하늘의 구름들, 바다의 자갈들…. 이런 것들을 아주 유심히 관찰하다 보면 어쩌면 놀라울 만한 발명품을 찾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이처럼 서로 연관 없는 개념들에서 뭔가 연결을 만들어내는 재주를 심리학적 용어로는 연상능력이라고 부른다. 딘 시먼톤은『과학 속의 창의력』이라는 책에서“연상하는 능력이 더 뛰어난 사람들은 과거에 경험이 거의 없는 영역 혹은 뭔가 논리적으로 쉽게 이해가 안 되는 현상에서도 뭔가 새로운 생각들과 개념들을 잘 연결할 수 있다”라고 적고 있다.

이 문장은 정신이상의 정의와 유사하다. 이상하다는 것과 창의적이라는 것 사이는 그 간격이 너무 좁아서 이 양쪽을 종종 넘나들지 않고 걷는다는 것이 어렵게 보이기도 한다. 이게 바로 왜 그토록 많은 위대한 창작자들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았던 것인가를 설명해준다. 다시 말해 겉으로 보기에는 전혀 논리적이지 않은 생각에 도전해보고 다른 사람들은 애써야만 파악이 되는 그런 것을 연결하려는 그런 의지 때문에 늘 이들은 그런 기이한 사람 취급을 받게 되고 미친 과학자라거나 예측 불가능한 예술가라는 고정관념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새로운 생각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람들이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는 의문을 갖거나 문제 접근을 갖는다. 이 때문에 많은 이노베이터가 고독 속에 놓이게 되고 이상한 성격이라는 의심을 받게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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