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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니스 컴퓨팅의 시작

한빛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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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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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한빛

11,326

대학교수들이 세상의 모든 수학 계산을 수행하는 데 필요한 컴퓨팅 기계의 양을 고민하던 당시, 두 남자가 대서양을 건너 영국에서 미국으로 가는 배에 몸을 실었다. 두 사람은 당시 영국에서 가장 크고 잘 알려진 회사로 손꼽히던 라이언스(J. Lyons & Co. Ltd)의 직원으로, 관리부서 업무를 자동화하는 방법을 찾고자 했다. 그들은 자신들이 살펴봐야 할 첫 번째 나라가 미국이라고 생각했다. 미국은 배급제 따위는 없고, 역동적이었으며, IBM이 세워진 사업 중심의 나라인 만큼 자신들이 찾고 있는 컴퓨팅 기계 솔루션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는 1947년 봄의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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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를 팔던 라이언스 매장. 컴퓨팅 혁명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새로운 시도

 

당시 라이언스는 영국에서 가장 규모가 큰 식품 회사였다. 특히 시내 길모퉁이마다 자리 잡은 찻집으로 유명했다. 커피 대신 차를 팔았을 뿐 스타벅스나 코스타 매장과 같았다. 라이언스는 판매용 식품(차, 빵, 케이크, 아이스크림, 소시지, 즉석 식품 등) 대부분을 직접 제조했을 뿐만 아니라, 출장요리, 식품 도매업 등 다양한 사업을 함께 운영 했다. 이 회사에서 다루었던 일들은 규모도 크고 복잡했기 때문에, 영수증 확인, 주문 정리, 계획 관리, 이익 분석 등을 제 시간에 정확히 끝마치기 위해 수많은 직원이 지루한 작업에 매달려야 했다. 컴퓨팅 기계를 사용해 자동화할 작업으로 이보다 더 적합한 일은 없을 것이다. 불행히도 두 사람은 미국에서도 적당한 컴퓨팅 기반 자동화 솔루션을 찾지 못했다. 열정 넘치는 판매원을 만나 IBM의 천공카드 기계를 포함해 수많은 장비를 살펴보았지만 만족스럽지 못했다. 심지어 새롭게 완성된 펜타곤(미국국방부)도 방문하였으나 별 소득이 없었다. 라이언스는 영국 전역에서 수십 년간 수백 개 매장을 운영하며 외식산업을 벌였다. 저수익 판매 정책을 펼치며 관리 업무를 처리해왔는데, 미국에서는 아직 통합적이며 효율적인 관리부서 운영의 필요성을 전혀 인식하지도 못하는 듯했다.

 

두 사람이 포기하고 영국으로 돌아가기 직전, 우연히 허먼 하이네 골드스틴(Herman Heine Goldstine)과 만났다. 그는 에니악 엔지니어로 기차역에서 존 폰 노이만을 만나 그에게 전자식 계산 기계의 개념을 소개했던 인물이었다. 라이언스에서 온 두 사람은 프린스턴에 있었던 대학 연구실에서 그와 만났다. 당시 그는 폰 노이만의 새로운 컴퓨터 개발 과제인 에드박 개발 일을 하고 있었다. 라이언스가 생각했던 아이디어가 비로소 명확히 전달되었고, 골드스틴은 그 일에 마음을 빼앗겼다. 그는 미친듯이 노트 가득 자신의 생각을 쓴 뒤, 깜짝 놀랄 만한 여러 사실들과 함께 전자식 컴퓨터에 대해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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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니악 엔지니어였던 허먼 골드스틴은 자신을 방문한 라이언스 직원에게 전자식 컴퓨터에 관한 중요한 이야기를 해주었다.]

 

골드스틴과 만난 두 사람은 미국 여행이 완전히 시간 낭비였음을 깨달았다. 그들의 문제 해결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다름 아닌 케임브리지 대학교 수리물리학 교수인 영국 컴퓨터 과학자 더글러스 하트리였기 때문이었다. 당시,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는 전자식 컴퓨팅 기계를 제작하고 있었으며, 그 기계야말로 라이언스가 찾아 헤매던 컴퓨팅 기계 솔루션이었다. 참고로 라이언스의 데이터처리 전담 부서는 런던 서쪽에 있었으며, 케임브리지 대학교까지는 두 시간도 채 걸리지 않았다.

 

미국에 출장갔던 두 직원이 영국에 돌아오자 라이언스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하트리와 모리스 윌크스에게 연락했다. 윌크스는 두 사람에게 컴퓨팅 연구를 소개했다. 양측은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즉시 협력 관계를 수립했으며, 라이언스는 연구 자금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윌크스의 경험을 활용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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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스에서 더글러스 하트리에 관해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컴퓨터를 만들고 있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수학자들과 사업가들이 각각 컴퓨터를 사용해 얻으려는 것이 상당히 다르다는 문제가 뚜렷이 나타났다. 회사에서 사용할 컴퓨팅 기계는 사양부터 달라야 했으며, 반드시 이를 염두에 두고 개발되어야 했다. 문제에 부딪힌 라이언스는 자신들이 사용할 컴퓨터를 직접 만들겠다는 용감하면서도 놀라운 결정을 내렸다. 에드삭, 에드박, 에니악과 같은 거창한 기존 컴퓨터 이름과는 달리, 레오(Lyons electronic office, LEO)라는 이름을 붙였다. 사업용으로 쓰기 위해 회사에서 직접 개발한 레오 컴퓨터는 그 자체로 새로운 사업이 되었다.

 

레오 컴퓨터가 기존 컴퓨터와 다르게 제작된 이유는 사용자 요구 때문이었다. 에드삭과 달리, 레오는 복잡한 수학 계산을 잘 처리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기존 컴퓨터와 다르게 설계되어야 했다.

 

기존 컴퓨터보다 기업에서 사용하기에 효과적이었기 때문에 포드 같은 기업이나 기상청 같은 정부 기관은 레오 컴퓨터를 채택하였다. 그러나 상업적으로 완전한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사무 시스템 전문가들을 위해 만들어져 과학자들에게 외면 받은 이유도 있었고, 사회 환경적으로 아직 IBM처럼 마케팅을 하지 못했던 이유도 있었다. 3세대 레오 컴퓨터가 출시되고 회사가 다른 회사에 인수되기 직전에서야 공식 로고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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